'문학교육' 태그의 글 목록 :: 소소하고 지극히 평범한 공간

백석, 모닥불과 안도현, 모닥불


 

 

 

모닥불이라고 한다면, 따뜻하고 훈훈한 기운을 내뿜는 것으로 일견 현대의 난방기구와 유사한 속성을 갖고 있는듯 보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모닥불'이라는 것은 사람을 상당히 서정적으로 만들며, 타오르는 불길에 집중을 하게 만든다는 묘한 매력을 지니기도 했다.

 

이런 모닥불이란 소재를 바탕으로 쓰여진 두 개의 시 백석의 모닥불과 안도현의 모닥불은 상호텍스트의 입장에서 살피자면 상당히 유사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먼저, 오늘 초점을 맞출 부분은 '백석'이라는 시인이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당히 매력적이며 준수한 인상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백석의 생애를 톺아볼 경우 항상 여성편력과 관련한 사항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곤 한다.

 

성북동에 있는, 법정 스님으로 유명한 길상사라는 절의 경우도 백석과 간접적인 영향관계를 맺고 있다.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나타샤'의 보시로 만들어진 거대한 절이라는 말이 있기에... 하지만 백석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매력은 자신의 가정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군사분계선 일명 삼팔선으로 갈리며 남과 북이라는 분단이 결정되는 순간, 타의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납북되게 되는 나름 비운의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백석의 시들을 생각해 본다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있다.

 

'공동체', '토속' 등등

 

따뜻하고 옛스러운 향기가 뿜어져 나올 것 같은 그 소재들을 바탕으로 시를 써 내려가는 시인이다.

또한, 시어들은 방언으로 쓰여 있기에 사실 지금의 독자들에겐 오히려 낯선 외국어쯤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 사용은 백석 나름의 정신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언어를 지키고 유지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민족의 혼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언어를 잃는 다는 것은 한 나라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것이며, 일제 제국주의의 식민지 기간이 끝나고 난 후에도 반드시 언어가 바로서야 한다는 강렬한 관념이 백석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듯 하다.

 

그렇기에 그의 시에서는 토속적이고 정감이 가는 소재들과 언어들로 구성 돼 있는 것이다.

 

백석의 경우 대부분 두 가지의 주제 의식으로 굳어진다.

 

1. 공동체의 따스함과 추억

2. 공동체의 해체와 파괴에서 오는 안타까움, 쓸쓸함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쓰려고 한 것이다.

 

조금 더 백석에 관한 지식을 말하자면, 백석도 모더니즘의 경향성을 지닌 작가라 할 수 있다.

 

의아할 수 있다.

 

모더니즘이라는 것은 도시적인 감성을 기초로 하여 기존의 문학 형식을 파괴하는 것으로 그 대표자로 '김광균'을 들 수 있다.

 

 

시각적 이미지의 사용과 객관적 관찰을 통한 묘사가 주로 쓰이며, 천변풍경과 같은 작품에서는 '카메라 아이 기법'이라는 표현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속성이라면 백석과 모더니즘의 경향성은 상당히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나, 백석은 향토성을 지닌 모더니스트로 분류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백석의 모닥불을 감상해 보자.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시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뭉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지금 편의상 행을 구분했지만, 3연 3행으로 이루어진 시이다. 굉장히 길게 사물들이 나열 돼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한 연이 한 행이 되고 한 문장이 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이라고 한다면, 원형상징의 입장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걔중에 소멸의 이미지를 통해 파괴적인 속성도 갖고 있지만, 모닥불 속에 들어가 하나로 얽여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해당 시를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

 

즉, 1연은 농촌 공동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로, 그러한 일상의 것들이 '모닥불'이라는 매개체를 바탕으로 한 대 어우러지는 화합을 일으킴을 알 수 있다. 2연은 이러한 화합의 모닥불 앞에 둘러 앉아 모닥불에 쬐고 있는 여러 사람들로 시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마지막 3연의 경우 모닥불의 속성이 조금 변화를 보이는듯 하다. '모닥불'을 매개로 하여 '할아버지'의 과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모닥불로 인해 '뭉둥발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역사'에 대해서 듣게 된다. '뭉둥발이'는 불에 의해서 발가락이 붙어버린 장애를 뜻하는 단어이다.

3연의 모닥불을 통해서는 비극적인 민중의 역사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모닥불을 통해 화즌 화합된 공동체의 삶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제를 정리하자면, 조화와 평등의 공동체적 합일 정신쯤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안도현의 '모닥불'을 살펴볼 차례이다.

 

 

모닥불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어두운 청과 시장 귀퉁이에서

지하도 공사장 입구에서

잡것들이 몸 푼 세상 쓰레기장에서

철야 농성한 여공들 가슴속에서

첫차를 기다리는 면사무소 앞에서

가난한 양말에 구멍 난 아이 앞에서

비탈진 역사의 텃밭 가에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 있는 곳에서

모여 있는 곳에서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얼음장이 강물 위에 눕는 섣달에

낮도 밤도 아닌 푸른 새벽에

동트기 십 분 전에

쌀밥에 더운 국 말아 먹기 전에

무장 독립군들 출정가 부르기 전에

압록강 건너기 전에

배부른 그들 잠들어 있는 시간에

쓸데없는 책들이 다 쌓인 다음에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언 땅바닥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훅훅 입김을 하늘에 불어넣는

죽음도 그리하여 삶으로 돌이키는

삶을 희망으로 전진시키는

그날까지 끝까지 울음을 참아 내는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한 그루 향나무 같다

 

'모닥불은 피어오른다'라는 동일한 문장의 반복, 1연의 경우는 '-에서'의 반복, 2연에서는 '-에'의 반복을 통해 운율감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반복은 운율의 형성뿐만 아니라 의미를 강조시키는 역할까지 수행하기도 한다.

 

 

'-에서'라는 부사격조사의 반복적 사용을 통해 특정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즉, 모닥불이 타오르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됨을 알 수 있으며, 2연에서는 '-에'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격조사의 반복을 통해 모닥불이 타오르는 시간을 알 수 있다.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으로 보잘 것 없거나 평범한 장소나 시간 속에서 혹은 안정과 나태의 시간 속에서 타오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닥불은 한 그루의 '향나무'같이 고고하면서도,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소재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양상을 바탕으로 모닥불이 두 시 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소재로 사용 됨을 알 수 있다.

 

엄밀히 그 긍정적인 속성을 구분하자면,  백석의 모닥불은 조화와 화합의 모닥불이며, 안도현의 모닥불은 희망을 갖게 하는 모닥불이다.

 

 

 

 

 

상호텍스트성


 

공부를 하다보면, 심심치 않게 듣는 용어 중 하나가 바로 '상호텍스트성'입니다.

 

그렇기에 해당 용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 하겠죠?

 

이에 해당 용어의 의미를 밝히고자 합니다.

 

'상호텍스트성' 간단히 말하면,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의 관계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텍스트'라는 것은 상당히 넓은 관념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인간이 향유하는 언어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이 대체적으로 이 텍스트란느 개념 안에 포함이 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즉, 이러한 텍스트들간의 상호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상호텍스트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호텍스트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독자적으로 형성 된 텍스트란 것은 없습니다.

 

특정 작품이나, 글의 경우 개별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독창적이고, 개별적인 텍스트 자체로 인식될 수 있으나, 이는 연속되는 무한한 텍스트의 우주 속에서 연속되는 일부로 파악하셔야 됩니다.

 

종합하자면, 모든 텍스트들은 그 상호관계 속에서 연속적으로 위치해 있으며 개별적이고 독창적으로 보이는 텍스트의 경우도 전에 만들어진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텍스트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죠.

 

이런 것을 간텍스트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상호 텍스트성은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의 모든 상호관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예컨대, 텍스트 사이의 인용, 표절, 복사, 모방, 혼성, 모방, 패러디, 의견 일치, 의미 중첩, 혼합적 의견 강화, 목소리의 배합과 중첩 등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다양한 영향과 수용관계를 비롯하여 거대한 텍스트들의 우주에서 의미론적 상관 관계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상호 텍스트성은 하나의 담화 사이에서의 응답 관계를 시작으로 한 작가의 작품들의 관계와 서로 다른 작가의 작품 사이의 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장르를 초월한 모든 문학작품과 타 예술 텍스트와의 상호 연관 관계를 함축한다. 그러므로, 모든 텍스트는 독창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텍스트와 후텍스트 사이에서 영향과 수용의 관계 고리를 형성하면서 의미 작용과 표현 작용을 암암리에 주고받은 결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문학이나, 독서 부분에서 해당 개념이 잘 나타납니다.

 

도종환 시인이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세한도라는 그림을 보고서 '세한도'라는 시를 썼으며, 백석의 모닥불과 안도현의 모닥불과 같이 연관관계를 갖는 무한한 텍스트의 우주를 볼 수 있습니다.

 

외에도 독서에도 상호텍스트성을 강조하여 '주제통합적독서'를 강조합니다.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여러 책을 읽어 나가는 방식으로 대상과 특정 문제 상황에 대해 심도 있는 이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국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어 교육론] 총체적 언어학습  (7) 2018.04.10

고은, 머슴 대길이


머슴 대길이

토막 상식 문학의 '목소리'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들어

도야지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르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한테는

주인도 동네 어른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 올라가서

홑적삼 처녀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 하고

지겟작대기 뉘어 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였지요

찬 겨울 눈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하였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이란다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긴 불빛이었지요

 

문학 작품을 마주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바로 '시의 제목'입니다.

 

'머슴 대길이' 아! 시의 제목만 보고도 시적 대상이 '머슴 대길이'라는 특정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자는 이 대상에 대해서 과연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을지 파악하고, 그러한 파악이 곧 시의 주제와 연결이 될 것입니다.

 

1연을 통해서 우리는 '머슴 대길이'라는 대상이 굉장히 일도 잘하며, 인품도 훌륭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적 화자가 직접적으로 '나'라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는 '머슴 대길이'에게 '가갸거겨'를 배우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조선어 말살 정책에 따라 '국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를 배우게 됐었죠.

 

그런데 '나'는 '머슴 대길이'를 통해 한글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머슴 대길이'의 가르침으로 인해 '나'는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결과와 장화홍련전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광복이 된 후 혼자 한글을 사용할 수 있다는 여러가지 이점들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본 시의 경우 '나'의 회상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득 기형도의 엄마 생각이 떠오릅니다. 엄마 생각의 경우에도 유년시절의 '나'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시상이 전개되죠.)

 

'머슴 대길이'의 경우 '홑적삼 처녀'와 같이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먼 데 바다'라는 더 큰 세계를 동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돌연 '머슴 대길이'의 목소리가 끼어 듭니다.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이란다.'

 

'머슴 대길이'가 한 평생을 살면서 가지고 있었던 지론이자 삶의 철학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죠.

 

바람이 드나들 정도로 남루한 복색을 하고 있음에도 대길이의 인품과 고결한 정신만큼은 굉장히 부유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대길이 아저씨는 '밤새우는 긴 불빛'과 같이 환하게 빛나는 고결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토막 상식]

 

시에는 가끔씩 다른 이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그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심화된 어쩌면 학부 쯤에서 다루어야 하는 개념인지 모르지만 이 '목소리'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렇게 한 작품에 많은 목소리가 얽혀있는 것을 '다성성'이라고 하며, 문학 작품들은 대체로 다성성을 추구합니다.

 

표면적인 단어 그대로 풀이하자면 다양한 목소리쯤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 간단한 개념은 아닙니다.

 

'다성성'은 바흐친이란 학자에 의해서 처음 생긴 개념입니다. 문학 내에서 인물들이란, 작가에 의해서 배치되는 수동적 존재들이 아닌 저마다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기에 이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문학 작품을 통해서 내려고 합니다.

 

위 시에서는 시인의 대리인인 '나'가 있지만, '나'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더불어 대상인 '머슴 대길이'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성성에 의해 바흐친은 '대화주의'에 대해서 얘기하죠. 이러한 인물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로 문학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

 

미천한 신분임에도 인정을 받는 모습을 보니 '머슴 대길이'와 '광문자전'을 한 번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형도, 엄마 생각과 고은, 머슴 대길이의 핵심적인 시상 전개방식의 공통점은?

 

고은, 머슴 대길이에서 '대길이'와 이태준, 복덕방에서의 '안경화'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하시오.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목차.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상징의 의미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


 

 

 

1.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녁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문학 작품을 해석할 때 있어, 작가와 창작 당시의 배경적 지식, 사회 문화적 맥락에 지식이 없어도 시는 시 그자체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내재적 관점' 혹은 '절대론적 관점'이라고 한다.

 

적절한 내적 근거를 가지고서 시를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요소들은

 

시어들의 관계이다. 단순히 하나의 시어를 독립적으로 놓은 상태에서 해당 시어의 긍정성과 부정성 상징성 등을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문제가 된다.

이에 시어들관의 관계 즉, 수식 관계나 서술어가 어떻게 끝나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시어들의 관계를 바탕으로 대상에 대한 화자의 인식과 태도, 시적 상황 나아가 주제를 형상화할 수 있게 된다.

 

위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불'과 '물'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을 이원대립적으로 본다면, 한쪽이 상보적 반의관계에 놓일 것만 같다. 즉, 한쪽이 긍정이라면 다른 한쪽은 부정이 되어야 하는 그런 느낌이다.

 

그렇다 위 시는 불과 물의 이미지가 대립이 되고 있다. 그리고 '가문 어느 집', '죽은 나무 뿌리'를 살릴 수 있는 생명력의 원천인 '물'은 화자에게 있어 상당히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물이 변화하는 양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비->강->바다 (점층적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상적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하늘'까지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소멸하는 이미지가 있지만 '저 불 지닌 뒤에 / 흐르는 물로 만나자.'라는 표현을 통해 '물'의 힘으로 '불'을 당장에 꺼뜨리는 것이 아니라, '불'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문득 떠오른 시가 있다. 서정주, '견우의 노래'라는 시이다. '견우의 노래'라는 시에서는 '이별'이라는 것을 더욱 깊고 애틋한 그리고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불'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고 이를 극복했을 때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가정법'이 사용 됐다는 측면이다. 현재 우리의 상황은 '물'이 되어 만날 수 없기에 '물'이 되어 만나기를 바라는 소망이 나타나는 것이다.

 

다른 외재적 관점을 끌고 오자면, 해당 시는 남과 북의 대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시인이 인터뷰를 통해 위 시의 모티브가 남한과 북한의 대립 관계라는 것을 밝혔다. 결과적으로 '물'의 세상 평화와 조화가 가득한 세상을 꿈꾸며, 통일을 염원하는 시가 되는 것이다.

 

이에 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생명력이 충만한 새로운 세계의 추구', '평화와 조화가 있는 통일 세계의 추구'

 

[토막상식]

 

 

알아두면 좋은 개념이 바로 '상징'이다. 그리고 우리가 '물'의 이미지를 생명력, 근원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일종의 '상징'이다. 그리고 상징은 여러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원형상징, 관습적상징, 개인적상징

 

위 상징은 '범위'에 따라 구분이 된다. 원형상징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인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상징들을 뜻한다.

관습적 상징은 개별 국가의 사회 문화적 맥락이 반영된 상징이며, 개인적상징은 말 그대로 창작자가 자신만의 의미로 재창조 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일견, 상징과 비유과 굉장히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연히 변별점이 존재한다.

둘의 구분을 위해서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라는 용어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스크림 같은 구름'

 

위 문장에서 원관념은 '구름'이고 보조관념은 '아이스크림'입니다. 즉 나타내고자 하는 원래 대상이 '원관념'에 해당하며, 이러한 '원관념'을 유사성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나타낸 것이 '보조관념'입니다.

 

상징 

비유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대응이 1 : 多 이다.

즉, '물'이라는 상징은 하나의 생명, 근원 등등 굉장히 많은 것들과 대응 됩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대응이 1 : 1 이다.

 

 원관념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원관념이 나타난다.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 

 

 

공무도하가에서 나오는 '물'의 상징성과 우리가 물이 되어에서 나오는 '물'의 상징성을 비교해 보자.

 

이호철의 큰 산과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에서 회복해야 될 것들을 서술해 보자.

조건 1. 회복에 필요한 것들을 작품에서 찾아 쓸 것.

조건 2. 조건 1에서 찾은 것들의 의미를 쓸 것.

조건 3. '우리가 물이 되어'의 경우 시인의 창작 동기를 고려할 것

 

우리가 물이 되어에서 사용된 '물'의 상징과 윤동주 '십자가'에서 사용된 상징의 차이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