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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폭포, 김수영 폭포


 

오늘은 동일한 제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두 편의 시를 보겠습니다.

 

역시나 동일한 제재 혹은 소재를 바탕으로 형상화된 시의 경우 당연히 상호텍스트적인 관점 속에서 묶일 수 있겠죠.

 

그렇다면 먼저 이형기의 폭포를 보겠습니다.

 

폭포 - 이형기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특이한 점은 전면에 나오는 목소리가 바로 '폭포'라는 것입니다. '그대'라는 청자를 상정하여 계속하여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질문의 요지는 대략적으로 폭포의 그 형상을 비유적 표현을 바탕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형상화의 방식을 하나하나 드려다보게 된다면, 굉장히 강렬하면서도 선명한 언어들을 바탕으로 한 편의 시가 직조 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칼자욱'이라든가, '박살나는' 등의 표현을 통해서 강력한 생명력을 형상화 시킨다기 보다는, 폭포 그 자체의 비극적인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폭포'라고 불리는 대상의 숙명적 고통이자, 실존적인 고통인 것이죠. 결과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슬픔과 비극을 폭포를 통해서 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폭포라는 형상으로 태어났기에 겪어야 하는 실존적인 고통의 모습, 인간이기 때문에 거쳐야 하고, 겪어야 하는 수 많은 고통을 폭포와의 유사성 속에서 풀어나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김수영의 폭포의 경우 '폭포'라는 대상 자체는 예찬의 대상이자, 지향하는 존재입니다. 즉, 닮고싶은 존재인 것이죠

 

 

폭포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해당 시에서 폭포라는 존재는 '무서운 기색도'없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는 고매한 정신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폭포라는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시구라고 한다면 다음 부분일 것이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 곧은 소리는 곧은 / 소리를 부른다'

 

 

김수영 시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성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으며, 강렬하게 내리 꽂히는 폭포의 생명력과 맞 닿으며, 살아 있는 정신, 곧은 정신 등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나타와 안정'과 같이 현재에 만족하여 정적으로 멈춘 삶의 모습을 추구하기 보다는, 동적인 삶을 추구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김수영 시인하면 떠오르는 시는 '눈'이나 '풀'일 것이다. 대체적으로 자연의 속성을 바탕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는 방식을 많이 취했으며, 정적이기 보다는 동적인 속성을 바탕으로 끊임 없는 운동감을 보여주는 시인이기도 하다.

 

김수영 시인도 모더니스트의 일반적 경향인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적으로 노래했으나, 서구사조를 뒤쫓는 일시적이고 시사적인 유행성에 빠져들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과정은 강렬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에 뿌리박은 시적 탐구를 바탕으로 1960년대 참여파 시인들의 전위적 구실을 담당하게 했다.

 

그렇다 김수영이란 시인은 현실에 참여하며, 강렬한 운동성을 바탕으로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나가는 것이다. (중략) 그러면 온몸으로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나의 모호성을 용서해준다면-'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산문의 의미이고, 모험의 의미이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동일한 제재를 바탕으로 시를 쓴다고 하여도, 작가의 의식과 관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주제 의식을 형상화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바탕이 된 논문이다. 조동일 교수님의 '자아와 세계의 소설적 대결에 관한 시론'이다.  

 


 

  소설이라는 말이 주로 들어가므로 위 논문은 소설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만, 장르론적 관점에 큰 기여를 한 자아와 세계라는 개념을 토대로 장르에 관해 훑어보기 위해 참고한 것이다. 시간에 따라 그 의미가 많이 변화해 왔다. 당연한 것이다. 인식의 차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생각의 추이들이 갈고 닦이면서, 현대의 개념을 완성시키고 여전히 그 의미의 확장과 축소를 더 해가고 있을 것이다.

  소설은 가담항설 도청도설, 도의 전파 수단, 도덕적 진실성, 서양의 novel이나 로만스의 개념, 현대에 이르러 확장되고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상승한 개념에 이르기까지 소설을 둘러싼 환경과 여건 그리고 인식의 변화에 따라 여러 모습과 의미로 변화해 왔다. 이기철학에 단서를 얻어 사람과 만물의 대립의 문제, 자아와 세계의 대립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이 대립의 문제는 기본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작품 내적 자아 : 단순하게 말하자면, 작품 안에 등장하는 인물(주인공)

작품 내적 세계 : 인물 혹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환경

작품 외적 자아 : 작품을 창작하거나 즐기는 우리

작품 외적 세계 :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또는 세계의 관념

  위 구성품들 무엇을 어떻게 반영했느냐에 따라 자아와 세계의 양상이 달라지며, 여기서 장르가 갈리는 것이다. 상당히 까다로우면서도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교술 : ​작품 내적 자아 및 세계에 작품외적 세계가 개입하고 있으며, 자아와 세계의 대립이 세계 쪽으로 귀착된 자아의 세계화 (자아보다 세계가 우위에 있음.)

서정 : ​작품 외적 세계의 개입이 없는 세계의 자아화이며, 주관적이며, 비특정 전환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세계보다 자아가 우위에 있음.)

서사 : 작품 내적 자아 및 세계에 작품 외적 자아가 개입하며, 자아와 세계가 어느 한 쪽으로 귀착되지 않고 대결한다. 자아와 세계의 대결 자체는 특정전환표현이며, 거기에는 작품외적 자아가 개입하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불완전 특정전환표현)

희곡 : 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이 없이 전개되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다. 작품 외적 자아가 개입하는 서사는 확정적인 데 비해 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이 없는 희곡은 집약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인물, 작중시간, 작중 장소의 설정에 제약이 따르고 현재형을 요구한다.

-전환표현에 대해서

​  ​여기서 '전환'이라 함 일상의 것 혹 현실을 예술적으로 변형(전환)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인식과 형상을 갖추어 작품 속에 쓰일 수 있게 그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교술​​은 흔히 수필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장르인 만큼 현실 그대로를 서술한다. 사물이나 장소를 나열하는 등의 방식을 취하기에 비전환 표현이라 하는 것이다. 즉, 예술적 변형을 하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끌어 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현실은 리얼리즘의 측면이 아니다.)

서정​ 갈래에서 비유와 상징이 빠진다면, 공허한 느낌이 들 것이다. 작품의 집약적 장치가 많이 들어가는 만큼, 일상과 현실의 예술적 전환이 확실하다. 또한 예술적 전환을 위해, 자신의 정서 표현을 위해 시적 자아는 어떠한 사물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니깐 어떠한 사물에 해당하는 것이 비특정한 것이다.

​서사​와 ​희곡​은 모두 일정한 배경이나, 사건, 인물 등이 설정되어 있다. 이를 특정전환이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서사는 끊임없는 외부세계의 개입이 이루어지기에 불완전한 것이며, 극의 경우 상영과 동시에 작가와 관객의 분리로 완전한이란 표현이 붙게 된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분야인 만큼 참 복잡하다. 역시 복잡한 존재인 것 같다. ​

 

 

고은, 머슴 대길이


머슴 대길이

토막 상식 문학의 '목소리'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들어

도야지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르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한테는

주인도 동네 어른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 올라가서

홑적삼 처녀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 하고

지겟작대기 뉘어 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였지요

찬 겨울 눈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하였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이란다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긴 불빛이었지요

 

문학 작품을 마주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바로 '시의 제목'입니다.

 

'머슴 대길이' 아! 시의 제목만 보고도 시적 대상이 '머슴 대길이'라는 특정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자는 이 대상에 대해서 과연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을지 파악하고, 그러한 파악이 곧 시의 주제와 연결이 될 것입니다.

 

1연을 통해서 우리는 '머슴 대길이'라는 대상이 굉장히 일도 잘하며, 인품도 훌륭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적 화자가 직접적으로 '나'라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는 '머슴 대길이'에게 '가갸거겨'를 배우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조선어 말살 정책에 따라 '국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를 배우게 됐었죠.

 

그런데 '나'는 '머슴 대길이'를 통해 한글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머슴 대길이'의 가르침으로 인해 '나'는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결과와 장화홍련전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광복이 된 후 혼자 한글을 사용할 수 있다는 여러가지 이점들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본 시의 경우 '나'의 회상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득 기형도의 엄마 생각이 떠오릅니다. 엄마 생각의 경우에도 유년시절의 '나'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시상이 전개되죠.)

 

'머슴 대길이'의 경우 '홑적삼 처녀'와 같이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먼 데 바다'라는 더 큰 세계를 동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돌연 '머슴 대길이'의 목소리가 끼어 듭니다.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이란다.'

 

'머슴 대길이'가 한 평생을 살면서 가지고 있었던 지론이자 삶의 철학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죠.

 

바람이 드나들 정도로 남루한 복색을 하고 있음에도 대길이의 인품과 고결한 정신만큼은 굉장히 부유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대길이 아저씨는 '밤새우는 긴 불빛'과 같이 환하게 빛나는 고결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토막 상식]

 

시에는 가끔씩 다른 이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그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심화된 어쩌면 학부 쯤에서 다루어야 하는 개념인지 모르지만 이 '목소리'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렇게 한 작품에 많은 목소리가 얽혀있는 것을 '다성성'이라고 하며, 문학 작품들은 대체로 다성성을 추구합니다.

 

표면적인 단어 그대로 풀이하자면 다양한 목소리쯤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 간단한 개념은 아닙니다.

 

'다성성'은 바흐친이란 학자에 의해서 처음 생긴 개념입니다. 문학 내에서 인물들이란, 작가에 의해서 배치되는 수동적 존재들이 아닌 저마다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기에 이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문학 작품을 통해서 내려고 합니다.

 

위 시에서는 시인의 대리인인 '나'가 있지만, '나'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더불어 대상인 '머슴 대길이'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성성에 의해 바흐친은 '대화주의'에 대해서 얘기하죠. 이러한 인물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로 문학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

 

미천한 신분임에도 인정을 받는 모습을 보니 '머슴 대길이'와 '광문자전'을 한 번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형도, 엄마 생각과 고은, 머슴 대길이의 핵심적인 시상 전개방식의 공통점은?

 

고은, 머슴 대길이에서 '대길이'와 이태준, 복덕방에서의 '안경화'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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