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태그의 글 목록 :: 소소하고 지극히 평범한 공간

 서정주, 귀촉도와 김소월, 접동새, 한국 문학의 전통적 특질의 계승


 

'문학'이라는 것은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일견 두 단어가 사실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역설적 단어의 조합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단순한 이항대립의 관계로 이 둘의 관계를 바라보면 문학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선이 발생할 수 있기에 주의해아 한다.

 

문학에는 세계 공통적으로 그 안을 관통하는 보편성이란 것이 존재한다. 가령 문학의 소재로 삼는 것들의 보편적 특성, 언어로 형상화 되어 작가가 전달학고자 하는 특정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 등이 보편성으로 취급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특수성이라 한다면, 사회 문화적인 맥락을 바탕으로 형성된 고유한 문화가 일궈낸 것들로 한국 문학의 경우는 '은근과 끈기', '자연친화적 사고', '웃음으로 눈물 닦기', '풍자와 해학', '이별의 정한', '한의 정서'등의 있을 것이다.

 

이중 오늘 다룰 두 시 '서정주의 귀촉도'와 '김소월의 접동새'는 '한의 정서'라는 한국문학의 고유한 문학적 특질을 계승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이라는 단어는 설명하기 굉장히 난해하고 힘든 단어이다. 단순하니 슬픔이나 좌절이 아닌, 피가 맺힐 듯한 단장의 슬픔과 그런 구구절절한 것들이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 뭉쳐있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으 설명하긴 했지만, 한의 전부를 설명한 것은 또 아니다.

 

 

대체적으로 문학적 전통적 계승의 그 계보를 그리자면 현대시 작가로는 김소월과 박제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둘이 대표적으로 한국 문학의 전통적인 소재들을 차용하여 시들을 만들어 냈으며, 문학적 특질을 잘 계승했다 하지만, 이 둘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다른 작가들에게서도 고유한 한국 문학의 특질이 도출될 수 있다.

 

 

오늘 살펴보고자하는 시 두 시는 사실상 같은 제목을 같고 있다.

 

귀촉도 = 접동새를 뜻한다.

 

이는 두 시 다 접동새 설화라는 전통적인 설화를 차용하였으며, 그 설화 자체에 이미 한의 정서가 내재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시가 한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서정주, 귀촉도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밝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먼저, '은장도'라는 시어를 바탕으로 화자가 여성임을 알 수 있다.

 

은장도라는 것은 여성의 정절을 지키는 수절의 도구로 사용 됐기에, 그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서역 삼만 리, 파촉 삼만 리 : 구체적인 숫자를 통해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거리를 가시화하고 있으며, 그 거리가 좁힐 수 없는 즉, 임의 죽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거리임을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화자의 슬픔과 외로움은 '육날 메투리'라 하여, 자신의 머리로 엮은 신발을 통해 형상화 되고 있으며,

 

마지막 연의 귀촉도를 통해 감정 이입으로 한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주제를 도출하자면, '임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회한'정도라고 할 수 있다.

 

김소월,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바이 깊으면

이 산 저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사실상 김소월의 시가 접동새 설화에 더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해당 시의 내용이 바로 접동새 설화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접동새 설화

 

옛날 평북 진두강 가에 10남매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계모를 들였다. 흉악하고 포악한 계모는 전처의 자식들을 심하게 학대하였다.

죽은 어머니가 남긴 물건을 모두 없애고 그 자식들에게는 끼니도 제대로 주지 않고 급기야는 외출도 금지시켰다.

소녀가 나이가 차서 박천의 어느 도령과 혼약을 맺고, 부잣집인 약혼자 집에서는 소녀에게 많은 예물을 주었는데,

이를 시기한 계모가 어느 날 그 예물을 빼앗고 소녀를 그 친어머니의 장롱 속에 가두어 불을 질러 태우자

그 재속에서 한 마리 접동새가 날아 올랐다.

누나의 죽음에 아홉 동생들이 슬퍼하면서 누나의 혼수를 마당에서 태우는데,

계모는 아까워하며 태우지 못하게 하였다.

한편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관가에서는 계모를 잡아 그 딸이 죽은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사형을 시켰는데, 계모의 재 속에서는 까마귀가 나왔다고 한다. 접동새가 된 처녀는 밤이면 동생들을 찾아와 울었는데,

접동새가 밤에만 다니는 까닭은 계모가 둔갑한 까마귀가 무서워서라고 한다.

 

 

 

 

 

이형기 폭포, 김수영 폭포


 

오늘은 동일한 제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두 편의 시를 보겠습니다.

 

역시나 동일한 제재 혹은 소재를 바탕으로 형상화된 시의 경우 당연히 상호텍스트적인 관점 속에서 묶일 수 있겠죠.

 

그렇다면 먼저 이형기의 폭포를 보겠습니다.

 

폭포 - 이형기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특이한 점은 전면에 나오는 목소리가 바로 '폭포'라는 것입니다. '그대'라는 청자를 상정하여 계속하여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질문의 요지는 대략적으로 폭포의 그 형상을 비유적 표현을 바탕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형상화의 방식을 하나하나 드려다보게 된다면, 굉장히 강렬하면서도 선명한 언어들을 바탕으로 한 편의 시가 직조 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칼자욱'이라든가, '박살나는' 등의 표현을 통해서 강력한 생명력을 형상화 시킨다기 보다는, 폭포 그 자체의 비극적인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폭포'라고 불리는 대상의 숙명적 고통이자, 실존적인 고통인 것이죠. 결과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슬픔과 비극을 폭포를 통해서 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폭포라는 형상으로 태어났기에 겪어야 하는 실존적인 고통의 모습, 인간이기 때문에 거쳐야 하고, 겪어야 하는 수 많은 고통을 폭포와의 유사성 속에서 풀어나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김수영의 폭포의 경우 '폭포'라는 대상 자체는 예찬의 대상이자, 지향하는 존재입니다. 즉, 닮고싶은 존재인 것이죠

 

 

폭포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해당 시에서 폭포라는 존재는 '무서운 기색도'없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는 고매한 정신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폭포라는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시구라고 한다면 다음 부분일 것이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 곧은 소리는 곧은 / 소리를 부른다'

 

 

김수영 시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성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으며, 강렬하게 내리 꽂히는 폭포의 생명력과 맞 닿으며, 살아 있는 정신, 곧은 정신 등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나타와 안정'과 같이 현재에 만족하여 정적으로 멈춘 삶의 모습을 추구하기 보다는, 동적인 삶을 추구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김수영 시인하면 떠오르는 시는 '눈'이나 '풀'일 것이다. 대체적으로 자연의 속성을 바탕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는 방식을 많이 취했으며, 정적이기 보다는 동적인 속성을 바탕으로 끊임 없는 운동감을 보여주는 시인이기도 하다.

 

김수영 시인도 모더니스트의 일반적 경향인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적으로 노래했으나, 서구사조를 뒤쫓는 일시적이고 시사적인 유행성에 빠져들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과정은 강렬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에 뿌리박은 시적 탐구를 바탕으로 1960년대 참여파 시인들의 전위적 구실을 담당하게 했다.

 

그렇다 김수영이란 시인은 현실에 참여하며, 강렬한 운동성을 바탕으로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나가는 것이다. (중략) 그러면 온몸으로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나의 모호성을 용서해준다면-'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산문의 의미이고, 모험의 의미이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동일한 제재를 바탕으로 시를 쓴다고 하여도, 작가의 의식과 관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주제 의식을 형상화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백석, 모닥불과 안도현, 모닥불


 

 

 

모닥불이라고 한다면, 따뜻하고 훈훈한 기운을 내뿜는 것으로 일견 현대의 난방기구와 유사한 속성을 갖고 있는듯 보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모닥불'이라는 것은 사람을 상당히 서정적으로 만들며, 타오르는 불길에 집중을 하게 만든다는 묘한 매력을 지니기도 했다.

 

이런 모닥불이란 소재를 바탕으로 쓰여진 두 개의 시 백석의 모닥불과 안도현의 모닥불은 상호텍스트의 입장에서 살피자면 상당히 유사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먼저, 오늘 초점을 맞출 부분은 '백석'이라는 시인이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당히 매력적이며 준수한 인상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백석의 생애를 톺아볼 경우 항상 여성편력과 관련한 사항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곤 한다.

 

성북동에 있는, 법정 스님으로 유명한 길상사라는 절의 경우도 백석과 간접적인 영향관계를 맺고 있다.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나타샤'의 보시로 만들어진 거대한 절이라는 말이 있기에... 하지만 백석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매력은 자신의 가정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군사분계선 일명 삼팔선으로 갈리며 남과 북이라는 분단이 결정되는 순간, 타의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납북되게 되는 나름 비운의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백석의 시들을 생각해 본다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있다.

 

'공동체', '토속' 등등

 

따뜻하고 옛스러운 향기가 뿜어져 나올 것 같은 그 소재들을 바탕으로 시를 써 내려가는 시인이다.

또한, 시어들은 방언으로 쓰여 있기에 사실 지금의 독자들에겐 오히려 낯선 외국어쯤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 사용은 백석 나름의 정신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언어를 지키고 유지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민족의 혼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언어를 잃는 다는 것은 한 나라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것이며, 일제 제국주의의 식민지 기간이 끝나고 난 후에도 반드시 언어가 바로서야 한다는 강렬한 관념이 백석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듯 하다.

 

그렇기에 그의 시에서는 토속적이고 정감이 가는 소재들과 언어들로 구성 돼 있는 것이다.

 

백석의 경우 대부분 두 가지의 주제 의식으로 굳어진다.

 

1. 공동체의 따스함과 추억

2. 공동체의 해체와 파괴에서 오는 안타까움, 쓸쓸함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쓰려고 한 것이다.

 

조금 더 백석에 관한 지식을 말하자면, 백석도 모더니즘의 경향성을 지닌 작가라 할 수 있다.

 

의아할 수 있다.

 

모더니즘이라는 것은 도시적인 감성을 기초로 하여 기존의 문학 형식을 파괴하는 것으로 그 대표자로 '김광균'을 들 수 있다.

 

 

시각적 이미지의 사용과 객관적 관찰을 통한 묘사가 주로 쓰이며, 천변풍경과 같은 작품에서는 '카메라 아이 기법'이라는 표현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속성이라면 백석과 모더니즘의 경향성은 상당히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나, 백석은 향토성을 지닌 모더니스트로 분류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백석의 모닥불을 감상해 보자.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시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뭉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지금 편의상 행을 구분했지만, 3연 3행으로 이루어진 시이다. 굉장히 길게 사물들이 나열 돼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한 연이 한 행이 되고 한 문장이 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이라고 한다면, 원형상징의 입장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걔중에 소멸의 이미지를 통해 파괴적인 속성도 갖고 있지만, 모닥불 속에 들어가 하나로 얽여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해당 시를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

 

즉, 1연은 농촌 공동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로, 그러한 일상의 것들이 '모닥불'이라는 매개체를 바탕으로 한 대 어우러지는 화합을 일으킴을 알 수 있다. 2연은 이러한 화합의 모닥불 앞에 둘러 앉아 모닥불에 쬐고 있는 여러 사람들로 시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마지막 3연의 경우 모닥불의 속성이 조금 변화를 보이는듯 하다. '모닥불'을 매개로 하여 '할아버지'의 과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모닥불로 인해 '뭉둥발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역사'에 대해서 듣게 된다. '뭉둥발이'는 불에 의해서 발가락이 붙어버린 장애를 뜻하는 단어이다.

3연의 모닥불을 통해서는 비극적인 민중의 역사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모닥불을 통해 화즌 화합된 공동체의 삶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제를 정리하자면, 조화와 평등의 공동체적 합일 정신쯤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안도현의 '모닥불'을 살펴볼 차례이다.

 

 

모닥불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어두운 청과 시장 귀퉁이에서

지하도 공사장 입구에서

잡것들이 몸 푼 세상 쓰레기장에서

철야 농성한 여공들 가슴속에서

첫차를 기다리는 면사무소 앞에서

가난한 양말에 구멍 난 아이 앞에서

비탈진 역사의 텃밭 가에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 있는 곳에서

모여 있는 곳에서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얼음장이 강물 위에 눕는 섣달에

낮도 밤도 아닌 푸른 새벽에

동트기 십 분 전에

쌀밥에 더운 국 말아 먹기 전에

무장 독립군들 출정가 부르기 전에

압록강 건너기 전에

배부른 그들 잠들어 있는 시간에

쓸데없는 책들이 다 쌓인 다음에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언 땅바닥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훅훅 입김을 하늘에 불어넣는

죽음도 그리하여 삶으로 돌이키는

삶을 희망으로 전진시키는

그날까지 끝까지 울음을 참아 내는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한 그루 향나무 같다

 

'모닥불은 피어오른다'라는 동일한 문장의 반복, 1연의 경우는 '-에서'의 반복, 2연에서는 '-에'의 반복을 통해 운율감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반복은 운율의 형성뿐만 아니라 의미를 강조시키는 역할까지 수행하기도 한다.

 

 

'-에서'라는 부사격조사의 반복적 사용을 통해 특정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즉, 모닥불이 타오르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됨을 알 수 있으며, 2연에서는 '-에'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격조사의 반복을 통해 모닥불이 타오르는 시간을 알 수 있다.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으로 보잘 것 없거나 평범한 장소나 시간 속에서 혹은 안정과 나태의 시간 속에서 타오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닥불은 한 그루의 '향나무'같이 고고하면서도,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소재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양상을 바탕으로 모닥불이 두 시 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소재로 사용 됨을 알 수 있다.

 

엄밀히 그 긍정적인 속성을 구분하자면,  백석의 모닥불은 조화와 화합의 모닥불이며, 안도현의 모닥불은 희망을 갖게 하는 모닥불이다.

 

 

 

 

 

고은, 머슴 대길이


머슴 대길이

토막 상식 문학의 '목소리'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들어

도야지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르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한테는

주인도 동네 어른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 올라가서

홑적삼 처녀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 하고

지겟작대기 뉘어 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였지요

찬 겨울 눈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하였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이란다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긴 불빛이었지요

 

문학 작품을 마주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바로 '시의 제목'입니다.

 

'머슴 대길이' 아! 시의 제목만 보고도 시적 대상이 '머슴 대길이'라는 특정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자는 이 대상에 대해서 과연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을지 파악하고, 그러한 파악이 곧 시의 주제와 연결이 될 것입니다.

 

1연을 통해서 우리는 '머슴 대길이'라는 대상이 굉장히 일도 잘하며, 인품도 훌륭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적 화자가 직접적으로 '나'라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는 '머슴 대길이'에게 '가갸거겨'를 배우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조선어 말살 정책에 따라 '국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를 배우게 됐었죠.

 

그런데 '나'는 '머슴 대길이'를 통해 한글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머슴 대길이'의 가르침으로 인해 '나'는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결과와 장화홍련전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광복이 된 후 혼자 한글을 사용할 수 있다는 여러가지 이점들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본 시의 경우 '나'의 회상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득 기형도의 엄마 생각이 떠오릅니다. 엄마 생각의 경우에도 유년시절의 '나'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시상이 전개되죠.)

 

'머슴 대길이'의 경우 '홑적삼 처녀'와 같이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먼 데 바다'라는 더 큰 세계를 동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돌연 '머슴 대길이'의 목소리가 끼어 듭니다.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이란다.'

 

'머슴 대길이'가 한 평생을 살면서 가지고 있었던 지론이자 삶의 철학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죠.

 

바람이 드나들 정도로 남루한 복색을 하고 있음에도 대길이의 인품과 고결한 정신만큼은 굉장히 부유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대길이 아저씨는 '밤새우는 긴 불빛'과 같이 환하게 빛나는 고결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토막 상식]

 

시에는 가끔씩 다른 이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그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심화된 어쩌면 학부 쯤에서 다루어야 하는 개념인지 모르지만 이 '목소리'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렇게 한 작품에 많은 목소리가 얽혀있는 것을 '다성성'이라고 하며, 문학 작품들은 대체로 다성성을 추구합니다.

 

표면적인 단어 그대로 풀이하자면 다양한 목소리쯤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 간단한 개념은 아닙니다.

 

'다성성'은 바흐친이란 학자에 의해서 처음 생긴 개념입니다. 문학 내에서 인물들이란, 작가에 의해서 배치되는 수동적 존재들이 아닌 저마다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기에 이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문학 작품을 통해서 내려고 합니다.

 

위 시에서는 시인의 대리인인 '나'가 있지만, '나'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더불어 대상인 '머슴 대길이'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성성에 의해 바흐친은 '대화주의'에 대해서 얘기하죠. 이러한 인물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로 문학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

 

미천한 신분임에도 인정을 받는 모습을 보니 '머슴 대길이'와 '광문자전'을 한 번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형도, 엄마 생각과 고은, 머슴 대길이의 핵심적인 시상 전개방식의 공통점은?

 

고은, 머슴 대길이에서 '대길이'와 이태준, 복덕방에서의 '안경화'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하시오.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목차.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상징의 의미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


 

 

 

1.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녁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문학 작품을 해석할 때 있어, 작가와 창작 당시의 배경적 지식, 사회 문화적 맥락에 지식이 없어도 시는 시 그자체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내재적 관점' 혹은 '절대론적 관점'이라고 한다.

 

적절한 내적 근거를 가지고서 시를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요소들은

 

시어들의 관계이다. 단순히 하나의 시어를 독립적으로 놓은 상태에서 해당 시어의 긍정성과 부정성 상징성 등을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문제가 된다.

이에 시어들관의 관계 즉, 수식 관계나 서술어가 어떻게 끝나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시어들의 관계를 바탕으로 대상에 대한 화자의 인식과 태도, 시적 상황 나아가 주제를 형상화할 수 있게 된다.

 

위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불'과 '물'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을 이원대립적으로 본다면, 한쪽이 상보적 반의관계에 놓일 것만 같다. 즉, 한쪽이 긍정이라면 다른 한쪽은 부정이 되어야 하는 그런 느낌이다.

 

그렇다 위 시는 불과 물의 이미지가 대립이 되고 있다. 그리고 '가문 어느 집', '죽은 나무 뿌리'를 살릴 수 있는 생명력의 원천인 '물'은 화자에게 있어 상당히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물이 변화하는 양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비->강->바다 (점층적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상적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하늘'까지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소멸하는 이미지가 있지만 '저 불 지닌 뒤에 / 흐르는 물로 만나자.'라는 표현을 통해 '물'의 힘으로 '불'을 당장에 꺼뜨리는 것이 아니라, '불'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문득 떠오른 시가 있다. 서정주, '견우의 노래'라는 시이다. '견우의 노래'라는 시에서는 '이별'이라는 것을 더욱 깊고 애틋한 그리고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불'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고 이를 극복했을 때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가정법'이 사용 됐다는 측면이다. 현재 우리의 상황은 '물'이 되어 만날 수 없기에 '물'이 되어 만나기를 바라는 소망이 나타나는 것이다.

 

다른 외재적 관점을 끌고 오자면, 해당 시는 남과 북의 대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시인이 인터뷰를 통해 위 시의 모티브가 남한과 북한의 대립 관계라는 것을 밝혔다. 결과적으로 '물'의 세상 평화와 조화가 가득한 세상을 꿈꾸며, 통일을 염원하는 시가 되는 것이다.

 

이에 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생명력이 충만한 새로운 세계의 추구', '평화와 조화가 있는 통일 세계의 추구'

 

[토막상식]

 

 

알아두면 좋은 개념이 바로 '상징'이다. 그리고 우리가 '물'의 이미지를 생명력, 근원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일종의 '상징'이다. 그리고 상징은 여러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원형상징, 관습적상징, 개인적상징

 

위 상징은 '범위'에 따라 구분이 된다. 원형상징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인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상징들을 뜻한다.

관습적 상징은 개별 국가의 사회 문화적 맥락이 반영된 상징이며, 개인적상징은 말 그대로 창작자가 자신만의 의미로 재창조 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일견, 상징과 비유과 굉장히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연히 변별점이 존재한다.

둘의 구분을 위해서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라는 용어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스크림 같은 구름'

 

위 문장에서 원관념은 '구름'이고 보조관념은 '아이스크림'입니다. 즉 나타내고자 하는 원래 대상이 '원관념'에 해당하며, 이러한 '원관념'을 유사성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나타낸 것이 '보조관념'입니다.

 

상징 

비유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대응이 1 : 多 이다.

즉, '물'이라는 상징은 하나의 생명, 근원 등등 굉장히 많은 것들과 대응 됩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대응이 1 : 1 이다.

 

 원관념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원관념이 나타난다.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 

 

 

공무도하가에서 나오는 '물'의 상징성과 우리가 물이 되어에서 나오는 '물'의 상징성을 비교해 보자.

 

이호철의 큰 산과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에서 회복해야 될 것들을 서술해 보자.

조건 1. 회복에 필요한 것들을 작품에서 찾아 쓸 것.

조건 2. 조건 1에서 찾은 것들의 의미를 쓸 것.

조건 3. '우리가 물이 되어'의 경우 시인의 창작 동기를 고려할 것

 

우리가 물이 되어에서 사용된 '물'의 상징과 윤동주 '십자가'에서 사용된 상징의 차이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