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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이 답답하면서도 내내 숨이 막히는 심정은, 폭력이라는 강압적 수단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억압적인 상황에서 발화 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폭력이라는 것은 항시 명분을 찾아 다닌다. 사실상 폭력이란 것 자체에서 우리는 명분을 찾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명분이라는 것은 단지, 방패막이로 작용하여 폭력 그 자체에 돌아오는 강한 비난의 화살을 막아주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결과적으로 인간사에 폭력의 씨앗이 멸절되지 않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군대라는 집단의 폐쇄성, 그리고 그러한 폐쇄성이 유지되는 은밀한 작동 방식 중 하나가 바로 폭력일 것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짚고 넘어갈 것이 하나 있다.

 

폭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신체적 접촉을 통해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해는 행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자존감이나, 감정에 상처를 입히거나, 무분별한 인신공격 등의 일체의 행위가 이 안에 포함이 되며, 폭력의 범위는 가해자의 주먹에 달린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감정에 달린 것이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이러한 피해자의 의식 자체가 하나의 무기로 작용하여 약자 프레임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하는 것 자체도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영화의 끝은 굉장히 허무하다. 내내 답답한 그 심정이 마지막 결말 부분에 와서는 가슴에 얹힌 것 처럼 내려앉아 버렸다. 어째서 이렇게 끝 맺은 것일까, 현실이라는 것은 그러한 답답함이 극적으로 해소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 이었을까

 

위 영화를 보니 문득 '창'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군대, 폭력이라는 두 가지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으며,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우악스러운 폭력의 장면들이 손을 떨리게 만든다.

 

폭력의 씨앗의 전염성은 굉장히 강력하다. 인간의 이성이나 자아에 새겨지기 보다는, 인간의 무의식에 강렬하게 새겨져 언제든 폭력이 발동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러한 폭력의 속성이 극악무도하게 나타나는 경우를 인간사에 걸쳐 우리는 수도 없이 봐 왔으며, 학습해 왔다. 그럼에도 반성하지 않고, 시정하지 못함은 무엇 때문일까 항상 경계해야 한다. 폭력에 몸을 맡기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 아닌 한 마리의 괴물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이 영화는 폭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고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의미있다.

 

 

 

난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에게 전염된 폭력의 씨앗이 시퍼렇게 꽃을 핀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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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전반적 분위기는, 조금 어두우며 답답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어쩐지 포스터 속 주인공의 얼굴은 초점을 잃은 채 조금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것이, 그에게 주어진 실존적 삶의 모습은 참으로 기구한 것이었다.

문라이트는 총 세 부분으로 구성 돼 있다.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 그리고 성인 시절, 한 사람의 일생을 엿보는 일대기적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개인에게 가해진 실존적 불안의 위압이 얼마나 무서우며, 서글픈 것인지에 대해 시사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부터 청소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그는 고질적인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왕따라는 것, 그리고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라는 것들은 정확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상당히 비합리적인 것들이다.

 

어떤 이유에서 단지 '리틀' 혹은 '샤리엘' 혹은 '블랙'이기에 이유는 없다 그저 '그'이기 때문에 이 모든 불합리한 것들이 가해진 것이다.

 

 

영상 시간에 비해 주인공이 뱉는 대사의 양은 상당히 적다는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적 그는 세 단어 이상을 말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저 끙끙 앓는 소년에 불과했다.

 

이러한 감정의 응어리가 자라고 자라, 응축 돼 폭발하는 시점이 바로 청소년 시절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의 등에 의자를 갈기며, 참기만 했던 그의 이력에는 범죄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이러한 연쇄작용은 샤리엘의 직업을 결정하게 된다.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으며, 그는 마약을 교환하는 중간상인이 된다. 그가 도망치고자 했던 굴레에서 결국은 벗어나지 못한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이자, 굉장히 상징적인 존재인 '케빈'이란 친구와의 만남 그리고 동성간의 사랑의 모습, 이를 통한 욕구의 분출등은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제대로 표출되지 않는 주인공의 감정선이 어쩐지 밖으로 표출된다기 보다는 안으로 안으로 삭아지는 느낌, 그래서 누군가의 몸을 타고 그 분노를 성욕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참으로 낯설다.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하나의 수단이 성욕의 해소일순 있지만, 본질적이며 근원적인 문제에까지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상 극명한 갈등의 양상이나, 미친듯이 터지는 감정선이라기 보다는 굉장히 섬세하게 운용되는 감정선을 볼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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